제628주기 정릉 기신제향 -2
(태조고황제계후 신덕고황후 강씨)
1, 일 시 / 2024, 9, 23,(월) 11;30
2, 장 소 / 세계유산 조선왕릉 정릉 / 貞陵(서울 성북구)
국가지정문화재 / 사적 제208호
3, 주 관 /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
4, 주 최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섭행단체 / 정릉봉향회(세종대왕 제5왕자 광평대군파종회)
정릉은 조선 제1대 태조의 계후 신덕고황후 강씨의 능이다,
신덕고왕후는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로 태조의 계후이다,
찌는듯한 무더위도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쾌청하게 맑은날 정릉기신제향이 많은 종문들이 참석한 가온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섭행단체인 광평대군파 종회 이원하 이사장을 비롯하여
대한제국의 황사손(皇嗣孫) 이원(李源)님과 수백명의 종문이 참석하셨다,
황사손이란 '황실의 적통을 잇는 자손' 이란 뜻이며 황사손 이원은 고종의
증손으로 의친왕의 13남 9녀중 9남 이충길씨의 장남으로 2005년 9월
후사 없이 타계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 1931-2005)씨의
양자로 선택 되었다,
신덕왕후의 가문은 고려의 권문세가로 태조 이성계가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정치 영역을 넓혀 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담당 했다,
태조의 원비는 신의왕후 였으나 태조 즉위 전인 1391년(고려공민왕 3)
세상을 떳기 때문에 신덕왕후가 조선 최초의 왕비로 책봉 되었다,
신덕왕후는 태조와 원비 신의왕후 사이의 장성한 여섯 아들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 하는데 성공 했을 정도로 정치적 역량이
뛰어난 인물이다,
태조와의 사이에서 방번, 방석, 두 아들과 경순공주를 두었으며
태조는 신덕왕후를 극진히 사랑했다 전한다, 1396년(태조5) 병환으로
승하 했으며 태조는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위해 흥천사를 세웠다,
신덕왕후가 세상을 뜨자 태조는 왕의 위엄도 생각하지 않고 통곡 했으며
상복을 입은채 안암동으로 행주로 직접 능 자리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신덕왕후가 위독 할때에는 내전에 승려 50여명을 모아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말년에는 사흘이 멀다하고 흥천사를 찾아 갔으며 심지어 "백관이 반열을 정돈
했는데 조회를 보지 않고 흥천사로 거동 했다" 라고 태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태조에게 이렇게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나 아버지 태조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태종이 신덕왕후를 좋아할리 없었다, 태종은 1409년(태종9) 2월 신덕왕후의
정릉을 정동에서 지금의 성북구 정릉 자리로 천장하고 그 석물은 광통교를
돌다리로 짓는데 사용했으며 신덕왕후가 세상을 뜬지 20년이 지나서 새삼
"강씨는 내게 조금도 은의가 없다" 라고 모질게 선언까지 하였다 전한다,
2024, 9, 23, 촬영,
정릉 재실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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