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크로체성당
이탈리아 /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 / Basilica di Santa Croce,
산타 크로체 성당은 "성스러운 십자가" 라는 뜻이다,
성당의 정면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이는 1853년 니콜로 마타스 라는
유대인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상단에 다윗의 별이 장식되어 있다,
피렌체 에서는 쉽게 볼수없는 프란체스코회의 성당으로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그린 조토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성당 내에는 피렌체의 위인 276여명이 잠들어 있는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무덤 조각에는
오른손에 망원경을, 왼손에 지구가 들려져 있다,
로마에서 숨을 거둔 미켈란젤로의 시신을 피렌체의 시민들이
몰래 가져와 이곳에 안치 했다,
라벤나 에서 죽은 단테는 지역에서 동의 하지 않아
돌아올수 없게 되어 대신 그의 영묘를 만들었다,
조각상 오른쪽 하단에 그에게 씌워줄 월계관을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이 안쓰러워 보인다,
2017, 3, 26, 촬영,
위대한 음악가 <조아키노 로시니>가 잠들어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
"윌리암텔 서곡" 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가 잠들어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
로시니는 이탈리아 페사로 에서 관악기 주자 아버지와 소프라노 어머니 사이에서 1792년 태어나 14세인
1806년에 첫 오페라 <테메트리오와 폴리비오> 를 작곡했다, 엄청난 다작가였던 로시니는 1812년 한해동안
행복한 착각, 바빌로니아의 키로스, 또는 벨사자르의 몰락, 비단 사다리, 시금석, 도둑의 찬스, 등을 작곡
하였고, 24세인 1816년에 작곡한 <세비아의 이발사>는 단 13일만에 작곡 하기도 했다,
젊은시절 일찌기 거부가된 로시니는 중년 이후 주로 프랑스에 거주 하면서 미식가이자 파리의 명사가 되어
파리에서 살았다, 1845년 아내 이사벨라 콜브란이 사망하자 이듬해 프랑스의 모델 올랭프 펠리시에(Olympe Pelissier)
와 재혼했다, 로시니는 두번 결혼 했음에도 자식을 낳지 못했는데 사망당시 그가 남긴 재산은 약 250만 프랑,
현재금액으로 환산하면 수백억원에 이르는 거금 이었다, 그는 파리에 정착 하여 1868년 폐렴이 악화되어 죽을때
까지 재혼한 아내와 파리에서 살았다, 로시니는 1868년 11월 그가 가장 싫어하고 꺼리던 13일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산타 크로체 성당 좌측편에 서 있는 단테의 기념비
당파 싸움에 휘말려 피렌체 에서 영구 추방 당한 단테는 1321년 라벤나의 영주 폴렌타의
외교사절로 베네치아에 다녀 오는길에 사망했고 무덤도 라벤나에 만들어 졌다,
세월이 흐른후 피렌체 사람들은 단테가 고향에서 잠들지 못한것을 아쉬워하며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 기념비를 세워 그의 넑을 위로 하고 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멀지 않은곳에 "단테 알리기에리가" 라는 좁은 골목길 있는데
그곳으로 조금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곳에 단테의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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