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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르투갈

미완성 사그라다 파밀리아(스페인)

by *상록수 2022. 8. 19.

                   

   

                      140년째 공사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 가족성당)

                        스페인 / 바로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 성 가족성당 / La Sagrada FAMILLIA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은 로마 가돌릭 성당으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882년부터 현재까지 약 140년째 공사가 진행중으로

          현재 미완성 상태이며 2026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중이다,

 

          가우디는 말년에 다른 일은 모두 포기하고 오직 사그라다 파밀리아 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한 세대에 완성 하기엔 성당은 너무 컷고 종교와 예술로 표현 하고져 했던

          수많은 상징물은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1926년에 가우디가 죽고 90여년의

          세월이 흐른뒤 드디어 가까스로 1차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여전히 미완성 이라 할수 있다,

 

          원래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건축학교의 교장인 프란시스코 데 파우라델 빌랴르 이 로사노가

          첫 설계를 맡았다, 하지만 의견 충돌로 돌연 사임하고 그는 가우디를 공사 감독으로 추천했다,

          당시 가우디의 나이가 서른한살 이었는데 그는 죽기 전까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전 생애를

          바쳤다, 그는 성당을 신이 머무는 기도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끊임없이 연구

          하고 탐구해 나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커다란 십자가의 형태이고 세개의 파사드(건물의 정면)가 있다,

          동쪽에는 예수의 탄생과 유년,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묘사한 탄생의 파사드를, 서쪽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수난의 파사드를 만들었다,

 

          특히 가우디는 수난의 파사드에서 빛의 명암과 요철을 극대화 해서 예수의 희생을 상기

          하고자 했다, 그리고 남쪽에 영광의 파사드가 있다, 성당의 탑은 총 18개로 설계되어 있고

          탑마다 종교적인 상징을 부여했다,

 

          성당의 본당에 들어가면 마치 숲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거대한 나무 기둥들이 둥근 천장을

          떠 받들고 있는 모습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 특징중 하나이다, 가우디는 건물의 수직

          단면이 포물선을 이루도록 했다, 이것은 가우디가 구엘성지 지하 성당을 설계할때 납자루를

          서까래에 매달아 고안해 낸 내력 구조이다, 그렇게 하면 성당 기둥과 아치의 경계를 정할수

          있다,

 

           그리고 포물선 곡선에 따라 기울어진 형태의 나무모양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곁가지인

           작은 기둥들로 둥근 천장을 지탱하게 된다, 본당 제단 아래에는 가우디가 묻혀있는 지하

           예배당이 있고 동쪽 파사드의 지하 입구로 들어가면 성당 건설과 가우디에 관한 전시를

           관람할수 있다,

 

                                  2017, 11, 12, 촬영,

 

 

 

 

 

 

스페인 바로셀로나 하면 금세기 최고의 테너중 한명인

호세 카레라스가 떠 오른다, 

나는 호세카레라스가 부른 '카르딜러'의 '무정한 마음' (Core 'ngrato)을

즐겨듣고 있는데 오늘은 바로셀로나 출신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스페인에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지역의 주민들은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1492년 스페인 통일후, 마드리드 정권으로부터 엄청난

압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언어도 자기들만의 언어를 고수하고,

지금도 분리독립을 꾸준히 주장해오고 있다. 그런데 동 시대에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테너가수 두 명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한 명씩 나온 것이다.

마드리드 출신의 플라시도 도밍고와 바르셀로나의 호세 카레라스,,

두 사람은 라이벌 인데다가 배타적인 지역 정서가 있으니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결국두 사람은 상대방이 나오는 무대에는 절대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1987년, 카레라스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그는 플라시도 도밍고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힘든 강적을 만났다. 불행히도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생존확률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백혈병과의 투쟁은 심신을 고갈시켰고,

더 이상의 무대에 서는것이 불가능했다.

그동안 상당한 재산을 모아 놓았지만 한 달에 한번씩 해야하는 치료를 위해서

스페인에서 미국의 시애틀을 왔다 갔다하니 치료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결국 그의 경영 형편은 극도로 열악해 졌다. 골수이식이며 치료에 많은 재산을

다 쏟아 부었건만 쉽게 병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그 즈음, 그는 마드리드에 "헤르모사 재단"이라는 자선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헤르모사 재단"은 백혈병 환자를 돕는 단체였다.  그는 신청서를 보냈고,

"헤르모사 재단"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건강을 되 찾았다. 그는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테너가수 로서 활동 재개에 성공했다,

호세 카레라스는 다시 세계적인 테너 가수에 걸맞는 많은 수입을 벌어 들였다.

그는 "헤르모사 재단"에 기부금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

재단의 정관을 읽어 보던 그는 놀랍게도 재단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이 다름 아닌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플라시도 도밍도가 병든 카레라스를

돕기 위해, 그 재단을 설립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카레라스가 경쟁자의 도움을 받는다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줄곧 익명을 고수했던 것이다. 크게 감동을 받은 카레라스는 어느 날

마드리드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의 공연장을 찾아 그를 놀라게 했다.

카레라스는 공연도중 무대로 올라가서 도밍고의 발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공개적으로 감사의 말을 건넨뒤에 용서를 구했다. 도밍고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힘껏 끌어 안았다. 위대한 우정이 싹트는 순간이였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따뜻한

배려가 음악가의 세계에서 라이벌을 이렇게 배려하고 자신의 재산을 내어 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금세기 두 위대한 음악가의 우정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고

존경스러운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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