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성당
이탈리아 / 피렌체
두오모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꽃다운 성모 마리아" 라는 뜻을 지닌 대성당은 여러지역에서 가져온
흰색, 녹색, 분홍색의 대리석으로 만든 외관과 붉은색의 우아한 쿠폴라가
더해져 꽃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자랑한다,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는 9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버텨온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노후하자 두오모를 새로건축하기 시작 했다, 그후 그가 죽은뒤 여러
건축가의 손을 거치면서 외관이 만들어 젔으나 그 누구 에게도 쿠폴라를 올리는
기술이 없었다,
이에 두오모의 후원자인 양모상인 길드는 쿠폴라 설계자를 공모 하였고 당시
유명한 건축가였던 로렌초 기베르티를 제치고 필리포 부르넬레스키의 설계가
채택 되었다,
그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중 판테온에서 착안한 최초의 돔 기술을 만들어 냈다,
이중 돔을 만들어 내부의 돔을 가볍게 만들었으며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헤링본
무늬로 배열했다,
두오모 내부에는 메디치 가문의 페르디난도 1세 대공의 후원하에 미켈란젤로의
제자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최후의심판> 천장화가 있다,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8각형의 돔은 빛에 둘러싸인 예수와 성인, 천사들이 천국을 상징하는 중앙 내부에
있고 그 둘레를 인간세상이 감싸고 있다,
2017, 3, 26, 촬영,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두오모성당 전경
이날 두오모 대성당을 방문 하던날 내부를 개방하지 않아 내부를 관람 하지 못했다,
내부에는 메디치 가문의 페르디난도 1세 대공의 후원하에 미켈란젤로의 제자 조르조 바사라가
그린 최후의 심판 천장화가 있다,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8각형의 돔은 빛에 둘러싸인 예수와 성인, 천사들이 천국을 상징하는
중앙 내부에 있고 그 둘레를 인간세상이 감싸고 있다,
바깥쪽은 지옥을 상징하며 바사라가 죽은뒤 페데리코 주카리가 완성했다,
내부 정문에는 복음사가인 마태오와 마르코, 루카, 요한의 초상화가 그려진 가톨릭 시계가 있다,
하나의 바늘이 24시간을 가리키는 중세의 시계로 하루에 7번씩 기도시간을 알렸으며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베키오 궁전과 두오모 성당 전경
피렌체는 찬란하게 빛났던 16세기 르네상스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 이다,
단테의 고향이자 인본주의와 예술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곳으로도 유명한
이 도시는 보카치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업적과 그들의 일상이 곳곳에 남아있어 이탈리아 문화 예술에서 빼놓을수 없는곳
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피렌체를 "꽃의 도시" 라 부르고 영어로 플로렌스(Florence)로
표기한다, 이탈리아어 "피오레"(Fiore)와 영어 "플라워"(Flower)는 꽃을 뜻하는
"Floie"에서 그 어원을 찾을수 있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또는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한 도시" 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꽃의 도시" 답게 피렌체는 백합을 도시의 꽃으로 정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명문 가문의 문장과 휘장에 백합이 많은것을 볼수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백합 문양의 장식과 메디치가문의 문장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메디치 가문을 빼 놓고는 피렌체의 역사를 이야기 하기 어려울 정도로
메디치가는 피렌체의 중심에 있다,
그 흔적은 피렌체 중앙역 앞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쉽게 만날수 있다,
아직도 옛날의 자취가 엿보이는 메디치가의 곡물창고는 지금은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곳 여기 저기에 르네상스 당시의 예술혼과 경제적 번영, 종교적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조토의 종탑
1334년 조토가 착수하여 그의 제자 피사노가 완성한 84m의 종탑이다,
탑 하단을 장식하는 육각형의 부조 패널은 피사노의 작품으로 인간의
창조와 예술, 노동을 묘사하며 원본은 두오무 오페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천국의 문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을 만든 필리포 부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1377~1446) 흉상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착공 되었다,
그 후 1420년대 돔을 덮을 단계가 되었는데 지름이 너무처서 아무도 손을 쓸수 없었다,
지름이 무려 42m의 팔각형 돔을 완성하는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세기 이상 돔은 지붕없이 뻥 뚫린 상태로 유지 되었다, 이때 해결책을 낸 사람이
로마에서 고대 건축을 공부하고 온 부르넬레스키 였다, 그는 이 성당의 지붕 돔 안쪽에
또 하나의 내부 돔을 만들어 무게를 줄일수 있다는 획기적인 계획안을 내놓았다,
무려 400만장의 벽돌의 하중을 지지대 하나없이 쌓아올린 그의 돔이 지탱하는 것에 모두 경악했다,
1436년 대성당위에 106m높이의 돔이 우뚝솟아 완성 되었다, 로마 판테온의 건축미학을
르네상스 식으로 재 해석해 만든 이돔은 예술과 건축기술이 결합한 천재의 한수라 할수 있다,
그래서 부루넬레스키 동상의 시선은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지붕 돔의 높은곳을 향하고 있다,
브루넬레스키 흉상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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