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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공연, 예술

반젤리스(Vangelis)의 '낙원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

by *상록수 2025. 8. 19.

 


반젤리스의 '낙원의 정복'

Conquest of Paradise

 

그리스,, 하면 맨 먼저 떠 오르는것은 신들의 나라,

건반 하나로 세계를 제패한 야니,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메조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그런 이름들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사람의 음악가,,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전자음악가 '반젤리스'(Vangelis, 1943~2022)는

영화음악과 독창적인 신시사이저 음악으로 널리 잘 알려저 있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Blade Runner OST, 그리고

Conquest of Paradise (낙원의 정복) 같은 곡들이 있다,

 

'낙원의 정복'은 1992년 발표하였으며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리틀리 스콧'(Ridley Scott) 김독 영화,, 콜럼버스의 신대륙항해

(1492년)를 소재로한 영화의 OST로 사용되었다,

 

이 곡은 영화속에서 신대륙을 향한 대항해와 인간의 도전정신, 이상향(낙원)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웅장한 합창과 신시사이저, 오케스트라적 사운드가

결합되어 경건 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는

저작권 문제로 인해 <1492 컬럼버스>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음악적 특징

 

코랄 합창 / 그레고리안 성가풍의 합창이 반복되며 마치 종교적 제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주고 있다,

리듬 / 꾸준히 이어지는 드럼과 심포닉한 비트가 항해와 행진을 상징하고 있다,

선율 / 장중 하면서도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며 점차 고조되어 인류의 이상향을

         향한 집단적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악기사용 / 반젤리스 특유의 신시사이저가 중심이지만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함께

         사용해 전통적 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사운드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반젤리스의 음악세계

 

반젤리스는 평소 인류, 자연, 우주, 영성,, 을 음악속에 표현 하려했다,

낙원의 정복은 단순히 콜럼버스의 항해 이야기라기 보다는 인류가 꿈꾸는 낙원

(Paradise)과 이상향을 향한 도전과 모험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곡이라 말할수 있다,

 

Conquest of Paradise 의 노래말 가사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가사가 라린어나 중세의 성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반젤리스는 실제로는 존재하는 언어가 아닌 자신이 창작한 인공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특정 언어의 문법이나 의미를 갖인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울림과

성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인위적으로 만든 소리의 배열이라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가사 자체는 뜻을 해석할수없는 무의미한 언어에 불과하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그레고리안 성가나 중세 라틴어 미사곡처럼 들리는것이다,

 

'반젤리스'의 '낙원의 정복' 유투브로 듣기

1492: Conquest of Paradise • Main Theme • Vangelis

 

 

2025, 8, 18,

음악칼럼니스트 상록수

 

 

  

                               반젤리스

 

 

 

 

 

 

 


콜럼버스에 대하여

 

스페인 세비아 '세비야대성당' (Sevilla Cathedral)  중앙제단(Capilla Mayor) 에는

콜럼버스의 묘(Sepulcro de Colon) 가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르네상스 양식),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네오 르네상스 양식)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고딕양식 성당 중에서는 세비야 대성당이 가장 크다,

 

콜럼버스는 초기 신대륙 발견에서 가장 선구자적 역활을 한 탐험가이다, 

4번에 걸친 항해(1492~93, 1493~96, 1498~1500, 1502~04)를 통해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탐험하고 개발 및 정착하는 계기와 토대를 구축했다,

 

제노바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상선을 타고 선박여행을 즐겨했던 수차례의

경험으로 대서양 서쪽에 있는 미지의 대륙에 대해 커다란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후 미지의 바다에 대한 항해상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여러 지리학자의 세계지리서를

섭렵하여 탐험의 이론적 기초를 두루 갖추게 되었다,

 

그는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을 만나 항해계획을 제출하고,

1492년 4월 항해를 허용한다는 산타페 협약을 체결했다. 10월 12일에 현재 와틀링 섬이라고

불리는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온갖 고초를 격은 끝에 항해하여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인도의 한 부분에 도착한 것으로 확신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인도의 한 부분에 도착한 것으로 확신하고 신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이 섬을 산살바도르(성스러운 구제자)섬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곧 원주민인 인디오

들로부터 황금과 향료가 나는 땅에 대한 정보를 캐면서 쿠바섬으로부터 히스파니올라섬

(지금의 아이티 섬)까지 항해했다.

 

그러나 1492년 크리스마스 밤, 산타마리아 호가 좌초하여 난파했기 때문에 급히 나비다

거류구를 설치하여 약 40여 명의 인원을 잔류시킨 뒤 귀환길에 올라 1493년 3월 15일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2차례에 걸쳐 황금과 향료(당시에는 후추)를 찾기 위한 항해를

시도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스페인 세비아대성당안에 있는 콜럼버스의 묘

2017,11, 15, 촬영,

 

 

 

 

                           스페인 세비아대성당안에 있는 콜럼버스의 묘

                           2017,11, 15, 촬영,

 


콜럼버스의 묘 / Sepulcro de Colon

 

스페인 정부는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

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

 

콜럼버스는 죽은후 스페인 땅이 아닌 신대륙에 묻히길 희망했다, 그의 소원이 비록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스페인 땅에 묻히지 않도록 그의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네명의 왕들이 콜럼버스의 관이 땅이 아닌 공중에 놓이도록 공중에서 들고 서있게

한것이다,

 

앞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에 있는 나바라,아라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것은 컬럼버스의 항해를 지시 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반대 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것이라 한다, 그리고 오른쪽 레온 왕의 창살 아래에는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가 꽃혀 있는데 국토회복 운동으로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들이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장이 해당 왕국을 의미한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이는데, 이것은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스페인 세비아대성당 내부모습

2017,11, 15,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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